우리집 강아지 동구는 7개월된 미니어처푸들 이에요. 동구가 우리집에 온 이후로 나의 삶은 바뀌었어요. 비가오나 눈이오나 덥거나 추워도 언제나 함께하는 동구와의 산책길에대해 이야기해봅니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 강아지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 개를 키우고 있다는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견주들과 소소 한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아채게 되었다!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 는 모습은 물론 길가의 작은 풀꽃들도 관찰하게 되었어요.
- 그 어떤 생명체건 돌보고 기른다는 것에는 만만치 않은 에너지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순전히 동구를 직접 그려보고 싶어서.
- 일기예보를 잘 챙겨 보지 않던 내가 아침에 제일 먼저 날씨 부터 확인하게 되다니!
- 어색했던 명절날이 화목한 분위기로 탈바꿈하게 될 줄이야! 개를 데리고 오면 같이 내쫓아버린다고 했던 아버지가 강아지 할아버지로 180도 변했어요.
여름에는 동구가 더울까 봐 걱정
겨울에는 동구가 추울까 봐 걱정
뛰어다니면 동구가 다칠까 봐 걱정
잘못 먹이면 동구가 배탈날까 봐 걱정
집에 혼자 두면 동구가 외로울까 봐 걱정
천둥번개가 치면 동구가 무서워할까 봐 걱정
반대로
똥만 싸도 동구가 예쁘다며 박수
식탁 위 홍시를 파먹어도 잘했다며 박수
공만 물어 와도 동구가 귀엽다며 박수
문을 긁으며 열어달라면 동구가 똑똑하다며 박수
발라당 누우며 배를 보이면 동구가 사랑스럽다며 박수
그러니 이제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남편의 개로, 나는 다시 태어나면 아빠의 개로 태어나겠다며 서로 배틀을 할 지경까지 이르렀죠. 나는 정말 빚을 졌어요. 털이 복슬복슬한 한 생명체가 부모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으니까 말이에요.
만남
어느 날 데려온 나의 반려견 동구. 피곤한 날에도 운동화를 꺾어 신고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든 이 녀석과의 산책은 나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미션과도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책임감 때문에 괴로운데도 마냥 희생하는 마음으로 참고 싶지는 않았고, 그런 건 결국 우리 둘을 옭아맬 뿐이고 얼마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길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발견하고 재미를 숨겨두었어요. 동구는 싫건 좋건 슬프건 기쁘건 행복하건 우울하건 세상 밖으로 나를 불러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만들고 그 길 끝에서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었죠.
나의 반려견은 태어난 지 약 7개월 정도 된 미니어처 푸들로, 동구라는 구수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반려견을 데리고 나갈 때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 청년 꼬마들 모두 이름을 듣고는 흠칫 놀랍니다. 그중 단 한 명도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슬플 뿐입니다.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바쁜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나는 ‘동구 엄마’로 거듭났고 아가 때 동구는 참 많이 귀여웠어요. 몸집이 작고 눈망울이 그렁그렁해 아련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반려동물을 교육한다는 건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배변훈련도 식사습관도 길들인 후에 동구는 자란 티가 제법 났어요. 그리고 어느새 4kg이 넘는 개린이(개+어린이)가 되었어요. 이때부터 동구와의 산책이 시작되었습니다.
산책시 필요물품은 기본적으로 배변봉투와 간식이고, 여름엔 물병, 겨울엔 옷. 추가적으로 물티슈나 이동장 정도 필요합니다.
동구와 산책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슬럼프. 언젠가부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슬금슬금 찾아와 내 방 한 켠을 차지하던 녀석은 그새 적응이 된 건지 뻔뻔해진 건지 겨우내 머물더니 이제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사라졌다가 갑자기 찾아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지만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축 늘어진 젖은 휴지처럼 만드는 슬럼프는 너무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어요. 슬럼프의 특징은 출근하지 않는 날은 밖에나가기 싫고, 출근하고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혼자있고 싶고, 둘이 있어도 혼자있고 싶고,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도 심리적으로는 혼자에요.
하지만 올해는 달라요.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한 살이 되지 않은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이 헛된 바람이라는 것을 알겁니다. 흐린 날씨만큼 마음도 머릿속도 복잡하고 힘든 날에도 산책을 나갑니다. 재빠른 동구 때문에 나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라죠. 사냥을 하던 습성이 남아 있고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은 그 시간에 장난을 치고 놀이를 하면서 보냅니다.
그러니 슬럼프가 찾아온 김에 한없이 늘어져 있고 싶은 나는 동구 때문에라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야 했고 나간 김에 움직여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대소변을 치워주느라 또 분주해져야만 했습니다. 암막커튼으로 빛 한 점까지 차단하고 싶었지만 한낮에 햇빛을 쐬면 강제 광합성(?)을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나의 슬럼프는 3주 만에 스멀스멀 기어들어가더니 끝내 동구라는 강적 때문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동구야! 고맙다. 너와의 산책이 이렇게 나에게 위안을 주는구나!!